오덕후에 대하여…

급한 태클이 있었습니다. (라고해도 재미있자는 이야기이지만)

요약하자면…

‘만보님은 오덕에 대하여 말씀하셨지만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오따쿠를 한국에서 ‘오덕후’로 지칭하면서 ‘오덕’이나 ‘덕후’라는 단어를 쓰는 경우가 많은데 오덕에만 대해서 말하셨습니다. 오덕을 말하시면 당연히 덕후에 대한 이야기도 하셔야 하는 것이 아닌지요.’

…입니다.

어느 정도 우스개소리지만 오덕후는 사실 3가지 한문개요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덕후(五德厚)와 오덕후(五德侯) 오덕후(五德后)입니다.

이 해석은 너무 진지하게 듣지는 마시고 그냥 재미난 생각이라는 정도로 받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덕후(五德厚) - 다섯 가지 덕목이 두터운 존재 = 성구별 없음

오덕후(五德侯) - 다섯 가지 덕목을 가진 제후 = 기본적으로 남자

오덕후(五德后) - 다섯 가지 덕목을 가진 왕비 = 기본적으로 여자

이 구분은 다시 2가지로 나누어집니다.

다섯가지 덕목을 가진 존재와 제후, 왕비와 같은 귀족적인 존재가치를 보여기 때문에 평민출신 덕후와 귀족덕후가 있다는 표현으로 정리됩니다. 이쪽에도 계급이 있다는 것이지요.

오따쿠의 기원이 되는 (御宅)를 생각해보면 ‘그대, 그대 집, 자네’ 와 같이 상대에 대한 예의를 가지고 지칭하는 언어로서 시작한 것인 만큼 정도껏 상대를 치켜세워주는 존재감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지금의 오타(ヲタ)와 같은 비속, 경멸어로 쓰이기 이전에 본래 ‘논(論)’을 하는 자리에서 상대에 대한 예의로서 존칭어로 사용된 이 단어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가집니다.

“너 ‘마징가’ 알지?”

“응.”

“그게 뭐야?”

 

일반인 -

“기운 센 천하장사~♪” (그러나 그려보라고 하면 태권V를 그리는 경우가 약 30%)

취미인 -

“만화영화 마징가Z에 나오는 로봇이잖아. 쇠돌이가 타고, 로켓트 펀치 쏘는…. 헬 박사랑 아수라백작 나오고. 쇠돌이 아빠가 만든 로봇을 타고……”

마니아 -

“일본 TV애니메이션으로 1972년에 등장한 로봇만화가 원작. 우리나라에도 많은 파급력을 가진 작품으로 일본에서는 슈퍼로봇의 원조로서 리얼로봇계의 시조로 알려진 건담과 함께 대표적인 로봇 애니메이션의 중심으로 알고 있다”

오따쿠 -

“카부토 코우지의 할아버지인 카부토 쥬조가 개발한 광자력 에너지와 재패니움 합금에서 정제된 초합금 Z를 가지고 무장된 탑승 조정형 로봇 마징가Z는 18m의 신장과 5가지 기본 무기를 장착한 슈퍼로봇의 시조로서 나가이 고우가 1972년에 발표한 만화에서 시작되어 TV만화영화 시리즈로 나왔다. 카부토 쥬죠의 과학적 라이벌이었던 헬박사가 고대 미케네제국의 유적에서 발견한 기계수를 가지고 세계정복의 야욕을 불태우고 있다는 것을 알고 마징가를 개발했는데 헬박사는 이것을 알고 자신이 재탄생시킨 아슈라남작과 브로켄 백작 등을 동원하여 마징가를 처단하려 한다……etc / 마징가는 이전가지 조정을 하는 로봇이 아니라 주인공이 직접 탑승하여 조정하면서 싸운다는 설정을 최초로 보여준 작품으로 슈퍼로봇의 시조라는 금자탑을 이룬 작품이다 ……etc”

 

이런 차이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지식과 논리에 대한 분석력과 이해에 대한 차이 때문에 일반인에 비해서 훨씬 심취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 때문에 작품에 대한 논을 할 때 마니아 이상의 사람들은 그 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에 대한 존칭을 쓰게 되고 그 부분에서 나온 것이 오따쿠라는 지칭입니다. 라고 해도 실제로 대담이 이어진 것은 <초시공요새 마크로스>에 대한 것이었고 당시로서는 기획자와 감독, 원안에 대한 SF론과 설정에 대한 토론이었지만요.

파생되는 과정도 다른데 마징가 캐릭터가 좋은 사람, 마징가 장난감이 좋은 사람, 마징가 만화가 좋은 사람, 마징가 애니메이션이 좋은 사람, 로봇만화가 좋은 사람, 아프로다이A가 좋은 사람, 보스가 좋은 사람, 헬박사가 좋은 사람 등등으로 나누어지면서 마징가를 좋아한다고 해도 그 파생적인 분류에 따라 자신이 정의하는 마징가에 대한 논과 이해가 다를 수 있습니다. 반면 전혀 다른 상상력을 발휘해서 카부토 코우지와 보스의 사랑을 꿈꾸어 보는 자기낭만파 여인네도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아주 사실적인 분야로 간다면 저는 여기서 거론한 마니아와 오따쿠의 구분은 한 단계 씩 더 내라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이러한 예를 든 것이지만 실제로 찌질한 신앙을 가진다고 해서 그것이 오따쿠라는 형태로 인식되지는 않는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글루스에서 말씀하신 ‘zigz’ 님의 의견을 들어보아도 확실히 오따쿠는 직업이 아니라 취미인의 분류로서 구분이 되는 형태일 뿐입니다. 오따쿠와 같이 파고드는 분석력과 이해, 해석력을 가지고 있는 형태라고 해도 제작자는 감독이요, 만화가요, 애니메이터요, 음악가요, 프로듀서요, 원형제작가입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입장에 있는 취미인에서 얼마나 깊게 파고드는 가에 따라서 ‘오따쿠’의 분류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으로 보고 싶습니다. 단 지금은 비생산성을 가진다고 해도 어떤 계기나 노력을 통해서 생산성을 발휘할 수 있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사실 그런 식으로 보면 모든 이가 기회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지요.

단, 오따쿠라고 해서 바로 실전에 써먹을 수 있는 스킬을 가지고 있는가? 를 따져보면 일반적으로 이론가일 뿐 직선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가지고 있는 경우를 보는 경우는 드물다고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저속한 평가를 받고 있는 오따쿠들은 유명인이나 제작자와 같은 존재가 자신들과 비슷한, 또는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흥분하고 즐거워하는 기준으로 만들어버리지 않나 합니다.

여기에 현실적으로 한국이라는 지역적인 특성에서 볼 때 ‘일본의 오따쿠’와는 구분되는 ‘한국의 오덕후’라는 존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한국에서 비유된, 언어유희로 탄생한 오덕, 오덕후는 확실히 일본 내에서 활동하는 것보다 더욱 무서운 능력을 요구하게 됩니다. 일본에서는 자국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외국어인 일본어를 기반으로 한 이해와 더 잘사는 일본 엔화를 경제적으로 이겨낼 수 있는 수집능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불법 다운이나 리핑된 소스를 가지고 있다던가, 백업한 자료가 많다는 가로 자신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 팬이라고 자청하는 것은 자제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지요) 일본의 오따쿠와 달리 우리나라의 오덕후(3가지 의미와 2가지 분류를 포함해서)는 결코 만만한 존재로 인식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하게 한국에서 오따쿠가 비하적인 뜻을 포함한 사회유행어로서 사용되는 데 있어서 당연하다는 지적을 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 오덕이라는 전희(前戱)적인 표현으로 등장했다고 해도 충분히 좋은 취미용어로서 쓰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같은 어원을 가졌다고 해도 뜻의 전환과 한국화로서 조금은 좋은 의미로 해석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지요.

그럼 한국적인 오덕후에는 어떤 형태의 이해가 있을까요?

외국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은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우월한 기분을 만들어주는 요건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돈이 있고 그것을 취미에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시간이 있어서 그것을 취미에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교양과 지식이 있어서 그것을 취미에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한국에서 굉장히 여유로운 부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자만심에 빠져서 거만한 형태로 인식되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하겠지요.

비단 이 부분은 일본어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정보의 기준에 있는 언어계를 본다면 적게 아는 것보다 많이 아는 것이 좋다고 하겠지요. 그렇다고 해도 실제 서울에 살았다는 것에 대한 지역적인 이익이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단순하게 지금 기준으로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만화, 음악, 미술, 청춘유희 등에 있어서 서울에 있었다는 것은 중요한 문화적, 지역적, 시대적 차이를 느낄 수 있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경우는 단순하게 느낀 것이 아니라 국내 여행과 해외여행을 통해서 차이라는 것, 문화수준이 비슷하거나 차이가 있는 나라들을 다니면서 더욱 강하게 느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전 세계 100여개 국가 이상을 볼 때 한국정도의 문화수준을 가진 나라와 그 이상의 나라가 상위 순에 속할 수 있는가?라는 자문자답을 할 때 그 상위라는 기준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그 나라의 기준을 말할 수 있다는 직설적인 표현을 떠나서 문화적인 부분이 차지하는 차이는 굉장히 많은 인식과 분석, 이해, 타인에 대한 배려 등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게 볼 때 해외의 오따쿠(좋지 않은 의미를 가진)는 대단히 비생산적이고 대단히 비사회적이고 비윤리적인 모습을 가진 하급인생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한국에서 발현되는 오덕후라면 조금은 다른 형태의 인식을 가진 비교적, 논리적이고 인간적이면서 문화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형태로 발전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현실이 주는 아픔에 대한 부분은 역시 많은 사람들이 성장해가면서 겪는 것 이상으로 즐겨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이를 떠나서 젊음이라는 분별력이 없는 무모함이 있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외국어를 알고, 도시문화 중심지역에 살고 있다는 것이 정보문화에 있어서 많은 차이를 줄여준 지금이라고 해도 +가 되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 현실을 부정할 수 없지만 인격이 형성되는 과정에 있어서 자신의 불행이나 어떤 면들이 취미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다양한 감상이 있고, 다양한 인간들의 이해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일상적인 기준을 가진 일반적인 상식선에서 알아볼 수 있는 취미인의 존재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일부 국내에서는 오덕후라는 존재로서 인식되는 자신에게 우월한 심리를 보여주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것은 일본에서도 일부 지향되고 있고, 해외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아도 그러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미국적인 심리를 기반으로 볼 때 아웃도어 활동이 두드러지는 생활 패턴을 가진 사교성에서 떨어지는 인터넷 종족은 대부분 ‘geek’이나, 논리만 파고드는 멋이 없는 (멋을 부릴 줄 모르는) 인간이라는 인식을 가진다고 합니다. 그러한 종속구분으로 보면 비활동적인 인간관계를 가진 (유유상종하는) 어벙한 (또는 순수한) 인간을 가르키는 치징으로도 쓰일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충 들어보면 마니악한 종속구분에 속한 이들은 아웃도어활동을 중시하는 이들(머리가 텅~텅~비어있는 육체활동 성향의 바보들)이 자신들을 비난한다는 말을 합니다. 건전한 육체와 정신을 가진 이라면 이러한 비판이나 말도 하지 않고 충분히 성숙된 자신의 취미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결국 어디에 가나 그러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할 것 같습니다.

결국 활동성향이 외향적인 것으로 가는 지 내향적인 것으로 가는지와 같은 구분으로 구분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이탈리아나 프랑스, 북유럽 친구들의 말을 빌리면 그렇게 비속적인 부분으로 불리는 것과 달리 ‘취미가 마니악하다’는 형태로 인식된다고도 합니다. 한국에서 애니메이션 만화는 애들이 보는 것이라는 인습과 같이 유럽지역 (물론 일부겠지만)에서는 여타 문화권의 하나로서 인식은 하되, 결코 깊이 파고들 가치관을 가지기 어려운 마니악한 문화로서 인식한다는 것이지요.

대만과 중국, 말레이시아,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에 거주하는 분들의 말을 들어보면 한국인이나 일본인이나 게임하고 있고 만화책 읽기 좋아하고 하는 모습을 보면 별다른 바 없는 마니악한 문화권의 사람이라는 인식을 가진다고 합니다. 심지어 만화,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것은 고급문화라는 인식을 가지기도 한다고 합니다.

실제 한국에서도 그런 면이 없다고는 말하기 힘든 것이 아시아권에서 가장 높은 금전가치를 가지고 있는 일본의 제품들을 구입해서 즐길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문화, 경제적인 부분을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적으로 아직 한국보다 뒤쳐진 국가의 경우, 인터넷 환경이 원활하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전자 정보보다, 종이와 활자, 그림과 같인 출판물, 제조된 장난감 등을 통해서 얻는 판타지가 더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어떤 형태로 인식하는가는 그 나라, 그 지역, 그 문화, 그 사람 개개인에 따라서 조금씩 다른 구분을 가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정의를 확정지어버리는 것은 사회 신조어로서 가질 수 있는 장래성을 고정시켜버리는 결과를 가질 수도 있다고 하겠지요.

그런 것을 넘어서 순수하게 미래지향적인 단어로서 오덕이나 오덕후가 쓰일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한국의 싸울아비가 일본의 사무라이의 어원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일본의 오따쿠가 한국의 오덕후의 어원이었다고 당당하게 말하면서 그 차이와 문화적인 이해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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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보 | 2008/11/21 18:27 | 취미の딩가잡담 | 트랙백(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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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오덕(五德) 인(人)
네이버 이웃이신 ‘캅셀’님과 야후 이웃이신 ‘연방의흰둥이’님, 파란이웃인 ‘우렁찬’님、 ‘별봐테니스’님의 의견을 들어보는 가운데 생각난 것이 있어서 정리하게 되었습니다.일본이나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중국과 같은 나라의 형태가 아닌, 순수한 우리나라의 마니아, 폐인, 오따쿠 속성의 인간들이 가지는 기준이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오덕인’이라는 것을 가지는 기준을 말하는 것입니다.즉 일반인의 기준......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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