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13일
오덕(五德) 인(人) 즉살(卽殺)

우리나라에서 오덕, 오따쿠에 대한 인식은 어떤 것일까요?
일반적인 상식선에서 생각할 수 있는 팬, 마니아, 아마추어 전문가, 폐인과는 다른 속성에 속한 것으로 봐야할까요?
실제로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명칭 하나만으로 전혀 다른 인상을 가지고 있지요.
오따쿠, 오덕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쓰레기라는 경멸의 뜻을 포함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 알려진 일본의 오따쿠 행태나 사진, 증거자료들을 보면 정말 인간이라기보다 혐오스러운 존재로서 표현되는 것이 더 많습니다. 또한 그러한 미디어 이미지 때문에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인간 말종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반면 오따쿠의 존재로서 인식되면서 어느 정도 명성이 있는 애니메이션 감독이나 음악가, 만화가 등을 볼 때 과연 그러한 존재로 보는가? 하면 또 그렇지 않습니다. 제대로 직종을 가지고 있고 사회적인 활동을 잘하면서 오따쿠 양성 작품을 내놓고 있는 이들은 그러한 경멸의 존재로 인식되지 않습니다.
같은 관심거리와 같은 패턴을 보인다고 해도 상극의 존재로서 인식된다는 것이지요.
이것을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옵니다.
실제 사회적인 기반으로 볼 때 ‘할 일도 없이 광적인 팬활동을 하는 것이 신과도 같은 존재라고 자기과신을 하면서 자기만의 세계에 도취되어있고 인터넷과 같은 가상공간에서 썩은 덧글이나 날리면서 자기관리가 안 되는 인물’이 어둠의 오따쿠, 오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 무엇을 위해서 사는 것인지 목적의식이나 생활기반이 불확실하고 단순하게 현실의 자기가 비추어지지 않는 곳에서 자기만족에 사는 이를 말하는 것인데 이런 경우라면 특별히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게임 등에 빠져 사는 취미인이 아닌 일반 대중에서 볼 때도 비인간적인 모습이 맞습니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대기업 열성사원과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무직의 인터넷 거주자가 같은 존재로 인식되기라 어려운 것이 사실이겠지요.
좋아하는 정도가 같고 행동패턴이 비슷하다고 해도 결국 둘은 같은 오따쿠라는 비하의 눈초리로 보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런 점 때문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식의 잘못됨이 존재합니다.
결국 무언가를 좋아하는 존재가 좋아하는 대상이 애니메이션이건, 음악이건, 요리이건, 장난감이건, 주식이건, 자동차이건, 디자인이건 좋아하는 이가 가지는 행동패턴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회적인 인식 상 구분되는 형태가 괴짜인가 팬인가, 마니아인가입니다.
프로페서라는 표현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이 삶으로서 동반되는 과정이 아니면 이러한 표현까지 쓰기는 어렵다고 하겠습니다. ‘해커’라는 표현이 컴퓨터 프로그램의 수치적인 논리의 입출력에 대한 경쟁을 할 수 있는 존재에 대한 암축적인 의미라고 할 때 컴퓨터 오따쿠는 별도의 의미를 가진다고 하겠습니다. ‘GEEK’ 이라는 표현과 ‘MANIA’라는 존재에 대한 의미를 동일시 하기 어렵듯이 그 경계선을 잡아낸다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정도밖에 없는 의식차이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싸이코살인마가 될지 정신과 의사가 될지는 모른다는 의미와도 같겠지요.
현실적으로 사회적 혼란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물론 일반론이지만) 추구하는 바가 삐뚤어지는 존재에 대한 부분은 어렵지 않게 인식할 수 있습니다. 또한 미디어 중독성이라는 부분도 있습니다. 공부라는 것은 어렵고 귀찮지만 장난감과 만화는 바로 구입만 하면 그것을 소유함으로서, 읽어서 지식으로서 주변, 또는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이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이야기가 가능해진다는 것이지요.
왜 팬이나 마니아, 폐인과는 다른 속성(그 근본 속성은 같다고 할 수 있지만)으로 보고 비판과 경멸의 시선이 강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심지어 한국의 경우를 본다면 코스튬 플레이어의 구분도 이쪽에 들어간다고 평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기본은 놀이문화의 부재와 문화적인 이해가 부족한 점이 가장 큰 것이라고 하겠지만 실질 우리나라 문화권에서 일본문화, 일본놀이문화에 대한 반감이 강한 것도 한 몫을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특히 세대적으로 차이가 심한데 2008년도를 기준으로 볼 때 50~60대 이상 되시는 분들의 많은 분들이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또한 현재의 2~40대 내에서도 살아가는 생활이 중요하지 놀고먹는 놀이문화에 대한 인식은 부정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970년대 한국에서 청바지와 장발이 반사회적인 인식으로 굳혀져 버리고 반대로 이것은 자유의 상징이라는 형태로 인식하는 이들의 세대 간 싸움으로도 볼 수 있던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세대 간 변화가 있다고 해도 만화, 게임, 애니메이션은 입신양명에 도움이 되는 공부와 달리 살아가는 생활에 있어서 도움이 되지 못한다, 또는 존경받는 인물로 성장할 수 없다라는 의식을 가진 윗 세대에 의해서 경시되어 왔습니다.
같은 시간을 들여서 생산, 벌 수 있는 사회구조를 볼 때 오직 자기만족뿐이고 지출만 발생하는 그 과정을 좋게 볼 세대는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놀이, 오락문화의 부족이 바로 세대간의 갈등을 낳는 원인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만화, 게임, 애니메이션, 장난감의 많은 부분이 일본문화에서 온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인식도 덩달아 나빠지는 것입니다. 반면 그중 중국에서 오는 것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대한국민으로서 가지는 자존심 상 중국은 우리나라보다 못사는 열등국가라는 의식이 있습니다. 그러한 중국에서 오는 만화, 게임, 애니메이션, 장난감에 대한 경멸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에 빠진 이를 가지고 경멸하는 표현은 별도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일본의 문화, 일본의 정보에 빠져서 그에 대한 추종과도 같은 심리를 가지는 것을 가지고 오따쿠 문화라는 지칭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 실질적인 문화권의 이해는 대부분 상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만화, 애니메이션, 방송, 드라마, 음악, 전자제품, 관광자원, 미술, 장난감, 음식, 패션 등 어느 하나 경제적이고 문화적이지 않은 자원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은 없습니다.
자아도취에 빠져서 나는 나 혼자서 존재할 수 있는 존재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자신이 먹을 것 입을 것 살곳 즐길 수 있는 것 돈을 벌어 활동할 수 있게 하는 것을 자급할 수 없다면 그것을 해주는 존재에 대한 고마움이 있어야 겠지요.
완전하게 혼자 살 수 없는 현실과 지금의 상황을 이해한다면 자신이 살아가는 가운데 가져야 할 가치관과 그것에 대한 논리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한국형 취미인, 또는 젊은 취미인들은 책 한권, 음반 하나(또는 음원 하나), 영화 한편, 고마움이 없이 공짜로 즐기는 것으로 당연한 것으로 알게 됩니다.
내가 만든 생산의 가치가 있어 그것을 인정받아 그것으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는 가치관을 모르기 때문에 오직 나만이 편하고 나만 즐거우면 되고 내가 아는 것이 모든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모르는 작품, 모르는 세계에 대한 이해보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주장 내에서 자신의 매력과 멋을 발휘하고 그것에 동조하는 이들과 뭉쳐서 자신만의 꿈을 보이려고 합니다.
실제 모 애니메이션 업체에서 인터뷰나 만화가 지망생의 지원 등을 보면 거의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도 많습니다. 단순히 내가 즐거우면 그만이다라는 생각과 내가 이해하면 된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사는 이도 많습니다. 반대로 정말 뛰어난 능력과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부모나 주변의 환경 때문에 그냥 묻혀서 다른 길을 가는 평범인생도 있습니다.
창작품을 즐기는 가운데에서 가장 소홀하기 쉬운 것은 즐겁기만 하면 된다라는 입장인 것 같습니다.
그것을 만드는 과정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다…까지가 일반적인 대중이고 과정과 도달되는 방법, 그러한 작품이 되는 배경까지 이해하려고 하는 이들이 마니아이고 팬이고 오따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심도적인 이해의 과정이 다르다고 하겠지요. 다만 알려진 대로 유명한 오따쿠 감독과 유명한 찌질이 오따쿠는 둘 다 오따쿠로 불려도 의미가 다릅니다.
하지만 그런 의미가 퇴색할 만치 오따쿠 - 실질적으로는 하드 팬, 마니아인 경우가 더 많지만 - 라는 지칭은 죽여도 시원치 않을 만큼 미미한 존재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러한 존재가 있지만 그런 존재가 100여명의 마니아 가운데 50명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닌 이상 그 단어로서 모든 이를 욕할 수 없다고 하겠습니다.
해외에서 우리나라 음악이나 춤, 전자제품을 좋아해서 ‘코리아 좋아요~’ 라는 인상을 가지고 있는 외국인을 외국에서 ‘오따쿠’라고 지칭하지 않습니다. 한국어적인 표현을 빌리면 ‘한빠’일 수는 있겠지만요. 한빠라는 존재가 팬이나 마니아적인 성향으로 불리면 다행이지만 오따쿠라는 지칭으로 바뀌면 욕이 되는 현실에서 볼 때 당연히 팬, 마니아정도의 표현이 가장 좋은 인식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폐인은 좋은 뜻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기 때문에 마니아이상의 것과 동급으로 보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오따쿠가 경멸의 뜻을 담고 있는 표현으로서 본다면 당연히 지향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보면 얼리어댑터가 새로 나온 신제품에 대한 평가를 할 때 그 물건에 대한 평가와 가치관을 가지지만 그것이 일본 제품, 미국 제품, 중국제품인가에 따라서 많은 구분이 생긴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화정체성에 혼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경우도 그렇겠지만 기실 자신의 존재라는 것은 어떤 나라 어떤 환경에 태어나도 자신이 가진 본질은 변하기 어렵다는 것을 모르는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자신이 한국에서는 어두운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비관해서 나는 일본에서 태어났으면, 나는 미국에서 태어났으면…이라는 말을 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지요.
제가 아는 한도에서 한국이건, 미국이건, 일본이건 기회와 노력의 결과는 대동소이합니다.
자신이 아프리카의 깡촌에서 태어나서 글자를 모르고 굶주려 가는 상황에서 총을 들고 사람을 죽이는 삶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문화를 이룬 문화국가에서 태어나 수많은 기회를 얻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지요.
만일 자신이 귀족이나 부자, 똑똑한 인간이나 멋쟁이로 태어났으면…이라는 말을 하는 것은 그 것 자체가 자신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환골탈태를 꿈꾸는 심정은 누구나 있고 입신양명에 대한 희망은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얼마나 실천할 수 있는 현실로 만들지 못하면 그것은 자신의 존재와 현실을 잘 모르는 것이라는 말을 하게됩니다.
자기가 지금의 자신으로 인지하고 자신을 모르는 경우라면 아직은 철이 덜 들었고 세상물정 모른다는 말을 합니다. 가끔 보면 정말 아무생각도 없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도 모르고 실수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현실의 자기를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또한 남을 인정할 수 있는 자신이 있어야 자신이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도 많지요.
행동, 태도, 말, 생각 들이 결코 사회적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만 지향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올바른 사람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그렇게 보이는 가운데 자신이 존재한다고 표시를 하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만일 우리 자신이 한국에서만 나오는 것으로 먹고 살고 문화를 영유할 수 있는 존재라고 한다면 순수한 자신의 주장을 충분히 주장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주장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산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지만 일본산이나 미국산, 중국산에 대한 인식을 가지지 못한 체 그냥 현실에 자신이 있는 자리가 이유도 없이 그냥 존재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대부분 현실을 망각한 상태로 누군가를 비난하고 경멸하고 못난 이 취급을 합니다.
자문자답을 하라고 하면 현실적으로 해결되지 못하는 답안을 내놓는 것이 대부분이 경우가 바로 그렇다고 하겠습니다.
결국 오따쿠나 오덕 중에서 실질적으로 경멸의 뜻으로 이해되는 존재는 이 세상에 필요가 없는, 또는 가치가 없는 인간이라는 뜻을 말하게 됩니다. 무뇌충이나 무개념과는 조금 다른 것으로 먹고 싸는 것 외에도 조금 생각이 있는 척 할 수 있는 것을 보면 인간기생충이라는 말이 어울릴 수도 있습니다.
언젠가 나비로서 새로운 삶을 꾸릴 수 있는 애벌레의 존재가 아닌 (그나마 인성이 있어서 나중에 갱생의 여지가 있거나, 또는 정상적인 인간의 삶을 꾸릴 수 있는 철이 드는 존재) 썩은 해파리나 기생충과 같은 삶을 사는 존재는 틀림없이 구분되어야 하지만 그것을 지칭하는 단어로 오따쿠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즉 이런 것에 빠져서 허송세월을 보내는 인간은 죽여서 뼈를 갈아먹어도 시원하지 않은 인간쓰레기, 있으나 마나한 존재가 오따쿠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실제 자기 주장을 제대로 할 줄 모르고, 편협한 시선을 가지고 자기 주장을 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자기연민에 빠져있는 인물이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에 빠져있는가? 라는 말을 하면 일반 사회에서 등장한 살인마, 정치사범, 폭력배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수치적인 모순을 떠나 실제로 막나갈 인간은 그 인간이 정치인이건 잘사는 사람이건 못사는 사람이건 남자건 여자건 상관없이 존재합니다. 그런 결과적인 것으로 욕을 할 수는 없지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정상적인 생활을 영유할 수 있는 인간이 되고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제대로 된 취미인이라는 소리를 합니다. 신체적인 장애는 눈에 보이거나 그에 대한 배려가 가능하지만 정신적인 장애는 알아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장애아가 있는 곳에서 봉사활동을 해보면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아이들은 보기에 멀쩡해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행동과 말,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서 상호간 행동을 표현할 수 있는 사이가 되어야 서먹함이 없어지고 인식을 하고 만나갈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굉장히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장애가 있음으로 인해서 서로가 만나는 계기는 좀 더 다른 방향으로 나갈 계기를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멀쩡한 척 하는 존재가 가지고 있는 취향에 대한 문제는 단순히 취미생활이라는 정도로 이해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현실적으로 실망하게 되는 것에 대한 보상심리로 취미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정신치료에도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이 오락과 웃음으로 인한 방법이니까요. 잘 빠진 신사복에 말끔한 외모를 가진 친구가 호감이 가는 유창한 말투로 피겨 판매점에서 귀여운 피겨를 구입하는 것은 이상한 눈으로 볼 일이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그것을 이상하게 보는 시선이 이상한 일이지요.
유명인이 만화나 애니메이션, 게임을 좋아하면 마니아인가요? 내가 좋아하면 취미이고 누가 좋아하면 마니아이고 오따쿠인지요? 기준이 없는 이해와 논란은 틀림없이 어정쩡한 기준과 잘못된 편견, 인식을 낳습니다. 실제로는 이런 부분들을 타파해야겠지요.
남을 비웃을 줄은 알아도 자신이 비웃음을 당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이들이 가지는 것이 바로 대중의식의 놀라운 맹점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앞서 말한 대로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는 성격의 괴상한 존재는 틀림없이 누가 모아도 괴상하고 그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건 말건 그 존재자체가 부족하고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하는 인물이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연민의 기준이 단순히 못나고, 못살고, 부족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자신 스스로가 만든 부족함이라면 정을 주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도박꾼이 도박에 빠져 가족을 버리고 집안을 탕진하는 과정을 보면서 도박을 욕할지 그 사람을 욕할지에 대한 기준을 세우는 것과 비슷한다고 하겠습니다.
A B C 라는 연결성이 있다고 할 때 대부분 A에 머물러 있거나 A에서 바로 C로 이동해간 형태의 존재에 대한 사고는 다릅니다. 애꾸가 천명인데 두 눈인 사람이 한 명이면 바보인 것과 같다고 하겠지요.
사고력의 단순함을 들 수 있습니다. 단순화된 사고력을 가지고 있고 좋아한다. 그러니까 즐긴다 라는 개념만 가진 이가 그것을 얻기 위한 수단과 방법, 노력에 대한 과정을 모른다면 (알더라도 무시한다면) 그것이 바로 지탄받을 존재이겠지요.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ABC만이 전부가 아니고 A-Z까지 있다고 할 때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린 나이에 이것을 모두 경험하고 그것을 이해하는 것은 무리라는 인식을 가집니다.
실제 나이에 비해서 조숙한 이들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어린 세대가 제대로 된 인식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을 보기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상대적으로 충분한 나이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면을 가지지 못한 이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인물들이 대부분 ‘정신적으로 불안한 어린이’ - 문화자폐아라는 말을 쓰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오따쿠, 오덕은 전부 문화자폐아인가?
또 그것은 아닙니다.
뒤지도록 두들겨 패서 갱생시키려 했던 과거의 습관적인 모습과 말과 설교, 인성적인 대우로서 훈계해 좋은 결과를 내려하는 과정이 어떤 바로 이해될까요? 또 그런 결과를 가지고 확실하게 구분이 되고 인간의 성장은 한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것일까요?
결과를 알 수 없는 확실성에 대한 논은 말장난이 되고 그것으로 끝나지만 그 논이 남아서 한 시대를 접하고 다음 시대로까지 이어지는 것은 확실히 무지한 이들의 유흥이라는 생각밖에 할 수 없게 됩니다.
인간이 태어나자마자 모든 영지를 깨우치고 만물을 이해하고 득도해 현실적인 아픔과 쾌락에서 해방된 존재로서 자신의 영적인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존재라면 모르겠지만 인간은 태어나서 경험하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신의 가치관을 확립해갑니다. 이것은 오직 취미만으로 이루어지는 인생이 아닙니다.
인생에 있어 필요한 경험과 인식을 바탕으로 자신이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자기가 있고 그것을 충분히 알고 있는 정신이 있기 때문에 취미라는 유흥을 통한 안식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취미가 인생의 전부일수는 없지요. 인생이 있고 취미가 있는 것이니까요.
눈에 보이는 단편적인 지식과 이해만으로 자신의 잣대를 만들지 않고 충분한 자기관철이 있다면 어떤 취미인생도 결코 빗나가야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작 어떤 이해를 가진다고 해도 찌질한 문화자폐아가 있으면 무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지요.
# by | 2008/11/13 17:15 | 취미の딩가잡담 | 트랙백(1)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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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덕(五德) 인(人) 즉살(卽殺) 오타쿠에 대해 가장 호흡이 긴 우리말 에세이에 속할지도 모르겠군요. D모 사이트 등에서 덕후 덕후 덕후 오덕후.... 이런 식으로 유치한 놀림거리로만 취급받는 오타쿠. 반면 타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바다건너의 문화강국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한 호기심보다는 남 눈치를 보면서, 스타일없이 스타일리쉬하게 사는게 무슨 자랑인 줄 아는 건 참 슬픈 일입니다....more
D모 사이트 등에서 덕후 덕후 덕후 오덕후.... 이런 식으로 유치한 놀림거리로만 취급받는 오타쿠.
반면 타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바다건너의 문화강국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호기심보다는 눈치를 보면서,
스타일없이 스타일리쉬하게 사는게 무슨 자랑인 줄 아는 건 참 슬픈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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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10대 2분, 20대 3분, 30대 6분(좀 편중된 세대차이지만), 40대 2분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말장난같이 시작한 이야기가 길어지고 있네요.
나름대로 이런 저런 분들과 의미를 헤아려보면서 한국화된 오덕후 문화가 정립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비하적인 것보다는 건전한 취미문화로서 즐길 수 있는 취미인이 조금 더 전문화된 모습으로 인지되엇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앞으로 얼마나 시간이 지나서 새로운 형태로 인식될지는 잘 모르고 있습니다.
전혀 의미없는 잡설이지만 관심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