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위의 포뇨 (崖の上のポニョ)

No.1218

 

감상매체 THE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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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여름 7월 19일부터 개봉해서 열심히 새로운 지브리의 전통을 보여주고 있는,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작품을 감상하고 왔습니다.

1991년부터 꾸준히 기회가 될 때마다 지브리. 미야자키의 애니메이션을 극장에서 보는 것이 어느 정도 전통이 되어 있기 때문에 시간만 맞는다면 과감하게 극장에 굴러가서 즐기고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지브리가 한동안 이런저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지브리 미술관도 새롭게 개장을 하고 있고) 과거의 작품들과는 달리 의도적으로 미야자키 하야오감독이 저연령층을 의식하고 만든 작품이라는 점에서 색다른 감상을 느낄 수 있습니다.

덕분에 감상적으로 본다면 성인취향의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깜찍함이 남아있어서 조금은 극장용이 아닌 TV애니메이션으로 전향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생기는 작품이었다고 하겠습니다.

몇몇 친구들은 일본판 인어공주라는 말을 하는 부분도 있지만 지브리 다운 연출과 미야자키 다운 스타일을 잘 감싸 안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초 대 걸작은 아니라고 해도 감각적으로 귀여운 느낌을 선사한 토토로 계열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뽀뇨~♪ 뽀뇨~♬” 하는 리듬에는 그냥 빠지고 말아서 결국 다음날 바로 OST를 구입하고 말았습니다.

자료로서 본다면 2004년에 등장한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이후로 4년 만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원작, 각본, 감독을 전부 맡는 것은 2001년 등장했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후로 7년 만이라고 하겠습니다.

포뇨라는 주인공 소녀와 5살짜리 소년 소스케의 짧지만 귀여운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은 상당히 인상적인 제작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스케라는 이름은 일본의 대표적인 문학가 나츠메 소세키(夏目漱石)가 쓴 소설 <문(門)>에 등장하는 '벼랑 밑 집에 조용히 살고 있는 노나카 소스케(崖の下の家にひっそりと暮らす野中宗助)'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결국은 이 제목이 등장하게 된 기본은 이 작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하겠지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吾輩は猫である)>와 같은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나츠메 소세키는 일문문학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지금 정리되어 일상생활에 쓰이고 있는 많은 일본어를 정립시킨 사람이기도 합니다. 1867년 2월 9일에 태어난 그는 1916년 12월 9일 죽음을 맞을 때까지 일본의 소설가, 평론가, 영문학자로서 활약을 했고 그의 소설은 지금도 일본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으로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인물, 사실은 우리에게 1000엔 지폐의 인물화로서 많이 알려져 있는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은 이상한 형태로 기억될 수 있는 인물이지만 그가 가진 느낌을 본다면 이 작품이 조금은 무겁거나 무언가 색다른 주제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도 됩니다.

소년 소스케(宗介)의 성우는 도이 히로키(土井洋輝)가 맡았고 히로인 포뇨(ポニョ)의 성우는 나라 유리아(奈良柚莉愛)가 담당했는데 소년소녀들의 깜찍함이 잘 살아있어서 즐거웠다고 생각합니다.

이 뽀뇨라는 이름은 미야자기 감독이 작화 중 “뽀뇻토 싯테루(ポニョっとしている) : 뽀요용하네” 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소스케의 엄마 리사(リサ)역을 맡은 것은 전문 성우가 아닌 아먀구치 토모코(山口智子)로 오랜만에 그 모습을 연상할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뽀뇨의 아빠이면서 과거 인간이었던 후지모토(フジモト)는 유명 코미디언 도코로 조지(所ジョージ)가 맡으면서 상당히 좋은 분위기를 보여줍니다.

뽀뇨의 엄마이면서 바다의 여신인 그란 만마레(グランマンマーレ)는 아마미 유키(天海祐希), 이름에서도 바다기운이 풍기는 매력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후지모토와 바다의 연신 그란 만마레의 사랑은 소설 <해저 2만리>에 등장하는 잠수함 노틸러스 호에서 근무했던 승무원 중 유일하게 아시아계열이었던 인물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그는 그란 만마레와 사랑에 빠져 바다 속에 사는 마법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별 것 아닌 스타일, 그렇게 대다한 것이 없는 느낌이라는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이라도 더 아동들에게 전달하고픈 느낌을 잘 살려왔기 때문에 뒷 끝이 없는, (하지만 역시 후속을 기대해보고 싶은) 재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지는 극장에서 판매한 카탈로그입니다. 개인적으로 색감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 우리나라 외래어표기법 상 포뇨라고 부르고 있지만 이 이름은 뽀뇨가 훨씬 원음에 가깝습니다.

표기상 알려진 포뇨를 쓰지만 개인적으로는 뽀뇨~ 스러움에 즐거운 작품이었다고 하겠습니다.

by 만보 | 2008/08/06 14:27 | 취미のAnimation | 트랙백 | 덧글(0)

방구석에서 하는 생각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생각을 가지겠지만 결국 사람은 같은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 전에 외국 친구들이 서울에 왔었습니다.

다들 일본에서 같이 공부했던 급우들이었지만 출신국가가 다들 달랐지요.


저는 한국이고, 한명은 중국, 한명은 말레이시아, 한명은 일본입니다.


이 일본 친구는 과거 친할아버지의 말을 들어서 한국과 일본의 과거사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반에서 2명뿐인 한국인 유학생 중 헬렐레 거리는 저에게 와서 “과거의 일은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말을 해온 친구입니다.


특별히 정치적이거나 역사적인 관점에서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역사와 사회학을 공부한 저로서는 당연히 다양한 인간교류를 통해서 조금 더 폭넓은 관계를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이것은 대의명분이고)

만화, 애니메이션을 이야기하면서 술을 나눌 수 있는 친구라는 것은 나름대로 좋았습니다.

덕분에 오랜 시간이 되어서도  다시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가 진실이거나 정의(定意)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이런 의견이 있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의식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일본을 비롯한 중국, 대만 등지의 나라들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조금은 더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제가 20여 년 간 해외를 돌아다니면서 얻은 감상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 나라에 살기 때문에 잘 알게 되는 점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점도 있습니다. 오히려 그 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점도 있다고 하겠지요.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아시아권에서 한류(韓流) 붐을 일으키고 있던 것을 기점으로 많은 나라들이 한국이 가지고 있는 새로운 위상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고 그런 점에서 더욱 부드럽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드라마 <CSI : 라스베가스>를 가지고 스위스에서 이탈리아 분들과 취미에 기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해보고, <대장금>을 본 베트남, 캄보디아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나름대로 한국인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문화적 수준을 가지고 있는 나라의 국민이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일본에서 보는 관점을 말하면 1998년, 김대중 정권이 세워졌을 때 보다 민주적인 정치체계로 들어섰고 이러한 시점은 민주주의(民主主義)라는 국가이념성향에 맞는 형태의 나라를 역사에 기록하게 되는 시점에 있어서 대한민국이 발전을 했다는 평가를 하게 됩니다.


물론 공화국정권체계인 이상 이런 정치체계가 가지고 있는 폐단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하지 않는 국회의원을 그대로 두는 것은 나름대로 관용이라고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이후 노무현 정부가 들어섰을 때 일본을 비롯한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군사정권의 잔재에서 벗어나고, IMF의 충격에서 벗어난 놀라운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IT강국이고 높은 문화수준을 자랑하는 나라라는 인식을 주었다고 하겠습니다.

특히 ‘2002한일월드컵’은 결코 유럽에 못지않은 축구사랑인구가 엄청나다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현실적인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문화적으로도 우수할 뿐만 아니라 민족적으로도 높은 단결력과 좋은 문화수준을 가지고 있는 나라라는 인식을 넓혔다고 하겠습니다.


그로 인한 한류와 같은 문화적 전파가 훨씬 좋은 인식을 가지고 전파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동남아시아, 극동아시아를 볼 때 순수하게 서양열강들의 식민지배형태를 벗어나 (태국은 지배당한 적이 없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근대에 들어 민주정치와 자유주의 경제체재는 활발한 변화를 겪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안정적인 체계를 갖춘 나라는 몇 되지 않습니다.


자유경제를 바탕으로 한 국제무역에 따른 정치적인 마찰도 생겨나고 있는 지금이기 때문에 더욱 이러한 면들은 많은 관점을 보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근래에 있었던 사건, 사고들을 생각해보게 된다면 역시 다양한 관점이 있겠지만 경제가 어려운(전 세계적인 불황을 공조하고 있다고 하지만) 시대를 맞이하면서 한중일은 자신들의 입장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상황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외국이 보는 , 근변에 있는 국가들인 일본, 중국, 말레이시아에서 그래도 조금 공부를 한 현 30대 친구들이 보는 관점에서 한국은 1998년부터 2007년까지 민주주의국가로서 많은 발전과 혁신을 이룬 국가라는 말을 하게 됩니다.

물론 순수하게 시대가 요구한 모습이었을 수 있고 그런 시대를 잘 만나서 가치관을 높였을 수도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부분별한 폭력지향성과 무식한(여기서 말하는 무식하다는 것은 학력수준이 아니라 문화적인 수준을 말합니다) 행동양식이 걸러지면서 국제사회와 문화권에 어울리는 글로벌 매너 수준을 만들어 간다고 할 수 있지 않았나 합니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는 이러한 시대를 ‘좌파정치의 시대였다. 지금은 우파정치 시대이다!’ 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민주주의와 자유경제시대를 맞이하여 제대로 발전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 외국의 기준으로 볼 때 지금은 다른 방향을 가진다는 말이 됩니다.


이런 기준에서 신구세력, 보수와 진보라는 말이 나오는 경향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점들은 저만치 멀리 밀어두고, 자유와 민주주의에 입헌된 국가가 정치나 정략의 좌우구별에 의해서 구분을 둔다는 것은 굉장한 시대착오적인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1800년대에서 1900년대로 넘어오는 가운데 가지고 있었던 한중일 극동 삼국은 엄청나게 자랑스러운 문화와 예술적 가치가 높은 수준의 국가로서 자랑해왔지만 그 가치관을 서양인들에게 인정받은 것은 역시 중국이 우선이요. 다음이 일본입니다.


한국이라는 가치관이 서양사에서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대부분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한국 전쟁 때로 알려져 있고 기존의 고고학에 관심이 있거나 아시아문화를 연구하는 이들을 제외하고서 한국(조선)이라는 나라는 일반인들에게 거론되기 어려운 지명도를 가진 나라였다고 하겠습니다.


우스개 소리일 수도 있지만 동남아시아의 몇 몇 나라 노인들은 한국이 미국의 식민지였다고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일본과 중국이 헷갈리는 분들도 많았던 1900년대 초기, 한문을 쓴다는 것 때문에 다들 같은 나라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말도 나왔던 한중일 3국은 굉장히 비슷한 문화적, 예술적 역사를 공유하면서도 정치, 경제, 근대사에 있어서 치열한 경쟁을 거쳐온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중국은 한국과 일본을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었고, 일본은 대륙으로 진출하고 싶어서 안달이었습니다. 동남아시아의 과거를 보면 중국의 횡포에 의해서 무참히 으스러진 민족, 국가가 많았다고 하겠습니다.

놀랍고도 치졸하면서 정략적인 제국문화를 보여 온 중국과 섬나라로서 지내온 다양한 내분을 끝내고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싶어도 섬나라이기 때문에 외면된 불안감을 해소하고자 뭔가 해보려고 했던 시대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던 일본이기 때문에 그들이 21세기의 모습을 얼마나 상상했을까는 참으로 의심스럽다고 하겠습니다.


중국은 공산권에 의해 새롭게 태어나면서 그 문화적인 정체성을 넘어서 통일주의를 가진 확고한 국가이념을 보였고 민족주의와 자유경제주의의 도입을 선도하면서 숫자로 밀어붙이는 현실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가장 가까운 문화, 경제 강국인 우리나라가 가장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고 하겠지요.


일본은 가뜩이나 역사적으로 중국에 대한 열등감과 서양열강에 대한 부담이 크게 작용하여 웃지 못할 대동아제국건설 이념을 걸고 일어선 군부가 쫄딱 망하면서 패전과 함께 경제, 정치권의 야합으로 인해 국가재건을 이끌었고, 경제동물이라는 비난을 받아가면서도 아시아 최고의 경제부국이라는 위치를 만들었다고 하겠습니다.

중국과 일본은 세계사에서 한국보다 일찍부터 그 존재를 알려왔고 한국이 해방과 전쟁으로 인해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동안 무섭도록 강한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이 기틀의 바탕에 한국전쟁이 있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우연의 일치라는 말을 할 수 있지만요)


중국은 통제된 사회에서, 일본은 패망에서 부활하고자 하는 믿음에서, 문화정치경제의 기념이 빨리 닮아갔습니다. (서양문화권에 동화되어간다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 동남아시아 국가나 인도주변은 말이지요)

21세기에 들어선 지금도 서양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 바라보는 한국의 인식은 세계유일의 민족분단국가, 한강의 기적, 2002한일월드컵, IMF위기 관리대상국가. 이런 정도로 알려져 있을 뿐입니다. 근변 국가가 아니면 정말 한국이라는, KOREA라는 인식은 대중적인 지위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하겠지요.

(심지어 아직도 IMF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해외 스포츠에서 한국 선수들이 활약해 상금을 쓸어가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가슴이 아파집니다.)


민족적인 자존심과 자유민주주의를 의식한 국민적인 행동력, 놀라운 경제발전을 이루어 낸 우리나라에 대한 자주적인 생각은 생각보다 널리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해외에 나가있는 많은 교포와 학생, 기업인들이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한국이라는 동양의 구석에 위치한 작은 한 나라가 보여주는 지지도는 대단한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역사라는 것은 결코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유동적인 것이라고 합니다.


고대사들은 그들의 역사가 끝을 냈기 때문에 정확한 기록으로서 남아서 그 기록을 바탕으로 새로운 문화가 연결되는 과정을 유추하고, 그런 발전과정(또는 퇴보)을 결정지을 수 있습니다. 이미 끝이 나버린 시간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역사 자체가 끝나는 것은 없다고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도 그렇고 과거의 역사, 앞으로 역사가 될 시간도 결코 그 정리하는 대상에 따라서 그 역사는 가치관을 다르게 가지기 때문이지요.

그런 경우, 대중이 가지는 인식은 대단히 많은 가치관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역사는 하나의 진실로서 기록하는 정도로서 머물게 됩니다.


A 라는 역사가 있다. B라는 소수의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역사는 A로 흘렀다.


정의(定意)가 A가 되는 것이 아니라 A+B = A 라는 결과론을 가지고 말하는 형태가 되어버린다고 하겠지요. 물론 AB뿐만 아니라 수많은 다른 의견이 존재했지만 그것이 대중적인, 또는 역사적인 증면으로서 남으려면 굉장한 무언가가 필요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2007년 11월, 한일문화교류 관련 일을 비롯하여 다양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문화인들과 이야기, 교류하고 보면서 느낀 점은 문화적으로 친근한 나라인 한국과 일본이지만 역사, 정치적으로는 미숙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웃이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은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


이 모습을 보는 동남아시아의 시선은 꼭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과 같지 않다고 해도 아시아 중심의 세계관에서 볼 때 가장 사건 사고가 많고 그것이 화제가 되는 나라라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인도가 중동지역의 새로운 문화강국으로 떠오르면서 아시아지역이 가지고 있는 문화권의 이동을 점쳐보는 이들도 있었지만 아직도 중국(앞으로 어떤 변수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을 중심으로 펼쳐질 것이라고 예상되는 국제경제시장을 빼놓고 보면 문화적으로 좋은 교류를 가지고 나가야 할 이웃국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또한 이러한 과정에 있어서 북한, 러시아와 같은 존재는 독선이 아니라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지요. (가끔 외국 친구들 말을 들어보면 한국과 북한의 모습은 애들 싸움같다고 합니다)


집 컴퓨터가 망가져서 지난 이야기나 회고하고 있는 만보였습니다.


본래 이 이야기는 모두가 모여서 밥을 먹고 있는데 방송에서 나온 ‘좌익 우익’ 논란, ‘한국에서 새로이 바뀐 외래어 표기법’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 것으로 특별한 정치적인 의도가 없음을 말합니다~.

by 만보 | 2008/07/20 15:08 | 취미の딩가잡담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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